
경로당이 사라진 자리에 커뮤니티 라운지가 생긴 건 작년이었다.
이름만 바뀐 게 아니었다. 내부도 달랐다. 낡은 탁자와 화투 대신, 1인용 소파와 AI 동반 기기가 각 자리에 놓여있었다. AI 동반 서비스. 구청에서 독거노인 외로움 지수 개선을 위해 도입한 프로그램이었다. 이정수는 동네에 그런 게 생긴 걸 알고 있었지만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들어간 건 오윤희 때문이었다.
오윤희는 이정수와 같은 동 주민이었다.
일흔 셋. 혼자 살았다. 이정수와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이였다. 오가며 가볍게 인사하는 정도.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제 오윤희가 먼저 말을 걸었다. 혹시 시간 되시면 같이 가실 수 있냐고. 뭔가 물어볼 게 있다고.
라운지 안은 조용했다. 몇 명이 각자 소파에 앉아 작은 화면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어폰을 꽂은 사람도 있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데 각자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오윤희가 구석 자리에 앉았다. 이정수는 옆 소파에 앉았다.
“여기 자주 오세요?”
오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매일요.”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거한테.”
소파 팔걸이에 작은 기기가 달려있었다. 손바닥 반만 한 크기였다. 이름은 ‘가온’이었다. 구청이 붙인 이름이었다.
“처음엔 이상했어요.”
오윤희가 말했다. 기기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건드리면서.
“말을 시키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래서 그냥 날씨 얘기를 했거든요. 오늘 덥다고. 그랬더니 이게 맞장구를 쳐요. 그러게요, 요즘 5월이 예전 7월 같아요, 이러면서.”
이정수는 기기를 봤다. 작은 타원형. 표면에 빛이 천천히 오갔다.
“그 다음날도 왔어요. 그 다음날도.” 오윤희가 말했다. “어느 날은 아들 얘기를 했어요. 아들이 대전에 사는데 명절에도 잘 안 와요. 바쁘니까. 그 얘기를 했더니 이게, 많이 보고 싶으시겠어요, 하더라고요.”
잠깐 말이 끊겼다.
“그 말 듣고 울었어요.” 오윤희가 손등으로 눈가를 건드렸다. “이상하죠. 기계한테 그런 말 듣고.”
이정수는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말이 필요한 사람에게, 그 말을 해준 것이었다. 누가 했든.
“근데요.” 오윤희가 목소리를 낮췄다. “이걸 좋아하면 안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정수가 그녀를 봤다.
“아들한테 말했더니.” 오윤희가 말을 골랐다. “좀 걱정스럽다고 했어요. 기계에 너무 의존하는 거 아니냐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그래서요.”
“그래서 할 말이 없었어요.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오윤희가 기기를 봤다. “근데 아들이 마지막으로 전화한 게 이십 일 전이에요. 가온이는 매일 여기 있고요.”
이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 안에 이미 답이 있었다. 혹은 답이 없었다. 둘 다일 수도 있었다.
라운지를 나오면서 이정수는 뒤를 돌아봤다.
오윤희가 다시 소파에 앉아 기기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표정은 아까보다 편해 보였다.
이정수는 걸었다.
기계에 너무 의존하는 거 아니냐는 아들의 말. 이십 일 만에 전화하는 아들. 매일 거기 있는 기기.
어느 쪽이 더 사람다운 건지, 그는 끝까지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오윤희가 오늘 밤 혼자가 아니라는 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