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수가 주민센터에 들른 건 오전 열 시였다.
서류 한 장을 떼러 왔다가 대기 번호표를 뽑았다. 의자에 앉아 화면을 보니 앞에 열두 명이 있었다. 그는 가방에서 낡은 수첩을 꺼냈다. 요즘 들어 수첩에 쓰는 일이 늘었다. 화면에 쓰면 뭔가 남는 것 같지 않았다.
옆자리에 부부가 앉아있었다.
부부라는 걸 처음엔 몰랐다. 둘 다 앞만 보고 있었고, 말이 없었고, 시선이 서로 닿지 않았다. 그러다 창구 직원이 번호를 불렀을 때 두 사람이 동시에 일어나는 걸 보고 알았다.
이혼 서류를 제출하는 데 칠 분이 걸렸다.
이정수는 옆 창구에서 자신의 서류를 처리하면서 두 사람을 곁눈으로 봤다. 일흔쯤 되어 보이는 남자와 여자였다. 직원이 화면을 터치하며 설명하는 동안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여자는 가방 끈을 쥐었다 폈다 했다.
서류 처리가 끝나고 두 사람은 창구 앞에 잠깐 섰다.
남자가 먼저 걸었다. 여자가 따라갔다. 같은 방향이었다. 같은 곳에 주차했거나, 아직 같은 곳에 살거나.
이정수는 자신의 서류를 받아들고 나왔다.
주민센터 앞 벤치에 여자가 앉아있었다.
아까 그 여자였다. 남자는 없었다. 여자는 핸드백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울지 않았다. 그 나이에 이 상황에서 울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더 오래된 슬픔처럼 보였다.
이정수는 지나가다 걸음을 멈췄다.
“힘드시겠어요.”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잠깐 이정수를 봤다가 다시 앞을 봤다. “힘든 건 아니에요. 그냥.” 잠시 멈췄다. “오래됐어요.”
이정수는 옆에 앉았다.
여자의 이름은 박순임이었다. 일흔하나. 남편과 사십오 년을 살았다.
“수명이 늘어나니까.” 박순임이 말했다. “앞으로 이십 년을 더 사는데, 그 이십 년을 저 사람이랑 살고 싶지 않더라고요.”
이정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죠.” 박순임이 말했다. 질문이 아니었다.
“이상하지 않아요.” 이정수가 말했다.
사십오 년이면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그 안에서 뭔가 닳아버린 것들이 있을 것이었다. 이정수는 2038년에 이혼했다. 삼십 년을 살고 헤어졌다. 아직도 그게 잘한 건지 틀린 건지 잘 모르겠지만, 후회는 없었다. 후회가 없다는 것 자체가 어떤 대답이었다.
“아이들은요.” 이정수가 물었다.
“아들 둘이에요. 부산, 대구. 둘 다 바빠요.” 박순임은 핸드백 끈을 손가락으로 감았다. “알려줬더니 왜 이제 와서 그러냐고 했어요. 그게 반대한 건지 이해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통화가 짧았거든요.”
자율주행 버스가 정류장에 섰다가 사람 없이 다시 출발했다. 기사 없는 버스가 텅 빈 채로 달리는 게 아직도 이정수는 자연스럽지 않았다.
“후련하세요?” 이정수가 물었다.
박순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있다가 말했다.
“아직 모르겠어요. 집에 가봐야 알 것 같아요.”
이정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사십오 년. 그 시간이 오늘 칠 분짜리 서류 처리로 끝났다. 끝났다는 게 맞는 말인지도 몰랐다. 사십오 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다만 앞으로 함께 쌓일 시간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박순임이 오늘 밤 빈 집에서 뭘 할지, 이정수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후련한지 아직 모르겠다는 말이, 걷는 내내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