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페 창가 자리에 여자가 혼자 앉아있었다.
마흔 중반쯤 되어 보였다. 커피는 거의 줄지 않았다.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내려놓고, 창밖을 보다가 다시 화면을 들었다. 뭔가를 기다리거나, 뭔가를 결정하지 못한 사람의 시간이었다.
이정수는 옆 테이블에 앉았다. 주문은 아메리카노 하나였다.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엄마, 나야.” 잠깐 들었다. “어, 나 지금 근처야. 잠깐 들를게.” 전화를 끊고는 화면을 오래 봤다. 들어가기 싫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여자가 나간 지 이십 분쯤 지나서 다시 들어왔다.
혼자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식은 커피를 한 번에 마셨다.
이정수가 말을 건 건 그 다음이었다. 습관 같은 거였다. 힘들어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
“괜찮으세요.”
여자가 이정수를 봤다. 잠깐 경계하는 눈이었다가, 그냥 말하기로 한 것 같았다.
“어머니가.” 그녀가 말했다. “치매 예방약을 안 드시려고 해요.”
이름은 서지현이었다. 마흔여섯. 어머니는 일흔여덟, 혼자 살았다.
치매 예방 보조제 ‘리멤버’는 정부 지원으로 65세 이상에게 무료 배포됐다. 복용률은 전국 82퍼센트. 임상에서 인지 저하 속도를 70퍼센트 늦추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지현의 어머니는 처방전을 받아놓고 석 달째 약을 봉투에서 꺼내지 않았다.
“왜요. 싫으시대요?” 이정수가 물었다.
“그게.” 서지현이 새 커피를 주문하며 말했다. “자연스럽게 늙고 싶다고 하세요. 약 먹어서 기억 유지하는 게 본인 삶이 아닌 것 같다고.”
“그 말이 이해가 안 되세요?”
서지현이 잠깐 멈췄다. “이해는 돼요. 근데 제 입장에선.”
말을 잇지 않았다.
“저한테는 엄마거든요.” 서지현이 천천히 말했다. “엄마가 저를 잊어버리면, 그게 저한테는.”
이정수는 들었다.
“약 드시면 저를 더 오래 알아보실 수 있어요. 드시기 싫은 거 알아요. 근데 엄마 입장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도 있고, 손자들도 있는데.”
창밖으로 자율주행 버스가 지나갔다. 5월 하늘이 뿌옇게 흐렸다.
이정수는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늙고 싶다는 어머니. 그것이 딸을 잊어가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뜻인지, 아니면 그 결과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인지. 둘 다일 수도 있었다.
“어머니께 직접 말씀하셨어요?”
“했죠. 그래도 싫다고 하시더라고요.” 서지현이 커피를 받아들었다. “억지로 드리면 되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고.”
“왜요.”
“엄마 삶이니까요. 엄마 몸이고.”
그 말을 하면서 서지현은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자신이 한 말에.
이정수는 카페를 나오면서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늙고 싶다는 일흔여덟 어머니. 그 자연스러운 노화를 감당해야 하는 마흔여섯 딸. 누구의 선택이 더 옳은지는 없었다. 그냥 두 개의 삶이 같은 문장 안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이정수는 수첩을 꺼냈다.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그냥 들고 걸었다.
손으로 뭔가를 들고 있는 게, 가끔은 도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