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처방전

‘외로움 측정 클리닉’은 지하철역 2번 출구 옆에 생겼다.

외로움 수치 정밀 측정. 혈액검사 + AI 심리 분석. 단계별 맞춤 처방. 사회적 고립 예방 프로그램 연계.

서울시가 시범 사업으로 도입한 것이었다. 외로움을 질병으로 분류하고 의료 체계 안에서 관리하겠다는 취지였다. 한국이 세계 최초였다. 해외 언론에서 다뤘다. 국내 반응은 반반이었다.

이정수는 간판을 여러 번 지나쳤다. 들어간 건 어느 비 오는 화요일이었다.


대기실에 사람이 네 명 있었다.

혼자 온 사람들이었다. 나이도 다양했다. 사십대도 있었다. 이정수는 번호표를 뽑고 앉았다.

옆에 여자가 있었다.

오십 중반. 우산을 무릎 위에 세워두고 있었다. 이정수를 의식하는 것 같지 않았다.

“처음 오세요?” 이정수가 물었다.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두 번째요.”


이름은 강미경이었다. 쉰일곱.

혼자 살았다. 이혼한 지 10년이었다. 아이는 없었다. 회사는 3년 전에 그만뒀다. AI로 업무가 자동화되면서 팀 자체가 없어졌다.

“처음엔 이런 데 오는 게 창피했어요.” 강미경이 말했다. “외로움이 병이면, 나는 아픈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지금은요?”

“지금은 모르겠어요. 그냥 한 번 재보자 싶었어요. 혈당 재듯이.”

이정수는 그 말이 좋았다. 혈당 재듯이.


“측정하고 나면 어떻게 해줘요.” 이정수가 물었다.

“처방이 나와요.” 강미경이 말했다. “저는 2단계가 나왔어요. 중등도 사회적 고립. 처방은 주 2회 그룹 활동 참여, 외출 빈도 증가, 필요 시 약물 보조.”

“약도 있어요?”

“있대요. 아직 승인 전인 것도 있고, 쓰는 것도 있고.” 강미경이 우산을 다른 손으로 바꿨다. “저는 안 먹었어요. 약으로 외로움이 없어지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서.”

이정수도 몰랐다. 외로움이 나쁜 것인지도 사실 몰랐다. 외로움이 없어지면 뭔가 다른 것도 없어지는 것 같았다. 예민함, 타인을 향한 주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


번호가 불렸다. 강미경이 일어났다.

“도움이 됐어요, 두 번째 오는 거 보면.” 이정수가 말했다.

강미경이 잠깐 생각했다.

“모르겠어요. 근데 여기 오면 대기실에 비슷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게.” 멈췄다. “좀 달라요.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하는.”

이정수는 대기실을 봤다. 저마다 다른 나이, 다른 이유로 온 사람들. 외로움 측정을 받으러 온 사람들.

비슷한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앉아있었다. 그것이, 어쩌면 클리닉이 주는 것 중에 처방보다 더 나은 것일 수 있었다.


이정수는 결국 측정을 받지 않고 나왔다.

번호가 불리기 직전에 일어섰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오늘은 아닌 것 같았다.

빗속을 걸으면서 생각했다.

외로움을 측정할 수 있다면, 치료도 할 수 있을까. 치료가 되면 좋은 걸까. 외로움이 없는 사람은 누구를 알아보러 벤치에 앉지 않을 것이었다. 무인 편의점 구석에 앉은 노인에게 말을 걸지 않을 것이었다.

외로움이 자신을 이 거리로 내보내고 있었다.

그 생각을 수첩에 적을까 하다가, 빗속이라 꺼내지 않았다. 집에 가서 적기로 했다.

잊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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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a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꿈꾸는 40대 1인 콘텐츠 크리에이터입니다. AI·의료·사회 변화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지, 2045년을 배경으로 한 근미래 단편소설 시리즈를 매일 한 편씩 연재합니다. 거창한 SF가 아닌, 지금 살아있는 50~60대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현실적인 미래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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