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지막 직업

스마트팜 보조 관리원 모집 공고를 처음 봤을 때, 이정수는 지원하지 않았다.

나이 제한이 없었다. 일주일 교육 이수 후 즉시 배치. 월 급여 95만 원. 주 3회 출근. AI 운영 시스템 보조 및 현장 점검 업무.

AI 보조. 그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시스템이 하는 일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 자신이 가르치던 아이들이 AI 교사에게 가던 날이 떠올랐다.

그래도 동네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공고를 저장해뒀다.


공고를 다시 꺼낸 건 박민준 때문이었다.

은평 스마트팜 단지 앞에서 마주쳤다. 칠십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안전모를 들고 주차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아니면 마중 나온 사람.

이정수가 지나치다가 멈췄다.

“여기 일하세요?”

남자가 돌아봤다. “오늘 마지막 날이에요.”


박민준. 일흔둘.

은평 스마트팜에서 2년 반을 일했다. 오이, 토마토, 엽채류를 재배하는 60층 짜리 수직 농장. 그는 AI 운영 시스템이 놓치는 이상 징후를 발견하는 일을 했다. 센서가 감지 못하는 것들 — 냄새, 색의 미세한 변화, 잎의 질감.

“식물은 말을 안 하잖아요.” 박민준이 말했다. “그러니까 봐야 돼요. 직접. AI가 데이터는 잘 읽는데, 데이터에 안 잡히는 게 있거든요.”

이정수는 흥미로웠다.

“그 일 잘 맞으셨어요?”

“좋았어요.” 박민준이 안전모를 손에서 손으로 옮겼다. “오십 년 만에 처음으로 식물 냄새 맡으면서 일했어요. 농촌 출신인데 서울에서 삼십 년 살았거든요.”


“왜 마지막이에요.” 이정수가 물었다.

박민준이 잠깐 멈췄다.

“새 AI 패치가 적용됐어요. 후각 센서 업그레이드. 냄새도 이제 감지해요.”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 저 같은 사람이 할 일이 없어지는 거죠.”

이정수는 말이 없었다.

“회사에서는 좋은 일이래요. 더 정밀하게 관리할 수 있으니까.” 박민준이 스마트팜 건물을 올려다봤다. 60층이 햇빛을 반사했다.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그냥.”

“그냥?”

“그냥 서운한 거죠.” 그가 말했다. “서운하다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다른 말이 없어서요.”


잠시 후 자율주행 셔틀이 들어왔다.

박민준이 탔다. 이정수는 손을 들었다. 박민준도 손을 들었다. 셔틀이 소리 없이 출발했다.

이정수는 스마트팜 건물을 올려다봤다. 60층 유리 너머로 초록빛이 보였다. 저 안에서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아무도 냄새를 맡지 않아도.

그는 주머니에서 커뮤니티 공고를 저장해둔 화면을 꺼냈다.

스마트팜 보조 관리원 모집. 나이 제한 없음.

화면을 닫았다. 걸었다. 다음에 다시 열어볼지는 모르겠지만, 지우지는 않았다.

📢 이 좋은 정보, 혼자만 알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지인과 가족분들도 혜택을 놓치지 않게
지금 바로 이 소식을 전해 보세요!

Kaira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꿈꾸는 40대 1인 콘텐츠 크리에이터입니다. AI·의료·사회 변화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지, 2045년을 배경으로 한 근미래 단편소설 시리즈를 매일 한 편씩 연재합니다. 거창한 SF가 아닌, 지금 살아있는 50~60대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현실적인 미래 이야기를 씁니다.

문의: ad.mp7296@gmail.com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