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연장 부작용

복지관 게시판에 종이가 붙었다.

‘장수 설계 상담 — 90세 이후 재정 계획 무료 컨설팅’. AI 재무 설계 시스템 기반. 예약 없이 방문 가능.

이정수는 게시판 앞에서 오래 서있었다.

예순여덟이었다. 평균수명 95세 시대. 앞으로 27년이 남았다. 27년이라는 숫자를 숫자로는 알고 있었다. 실감은 나지 않았다. 나지 않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랐다.

상담실 문이 열리면서 남자가 나왔다. 얼굴이 좋지 않았다.


남자가 복도 의자에 앉았다.

이정수도 자연스럽게 옆에 앉았다.

“상담 받으셨어요?” 이정수가 물었다.

“받았는데.” 남자가 말했다. “몰랐어요. 그렇게 될 줄.”


이름은 강동욱이었다. 일흔.

퇴직 후 연금과 저축으로 버텨왔다. 연금이 유예되면서 저축만 남았다. 오늘 AI 상담 시스템에 자산을 입력했더니 결과가 나왔다.

현재 자산으로 생활 가능한 기간. 83세까지.

“그 다음이 없는 거예요.” 강동욱이 말했다. “13년이 남았어요. 비어있는 13년이.”

이정수는 숫자를 들었다. 83세. 평균수명 95세. 12년의 공백.

“아드님이나 가족은요.”

“아들이 하나 있는데.” 강동욱이 손을 맞잡았다. “그 녀석도 요즘 경제가 안 좋으니까. 말 못하죠. 부담 주기 싫어서.”


“상담사가 방법을 안 알려줬어요?”

“알려줬죠.” 강동욱이 말했다. “역모기지, 주택 처분, 기본소득 외 보조금 신청. 다 해도 89세까지래요. 6년이 늘어나요.”

“그래도.”

“그래도 6년이 비어요.” 강동욱이 천장을 봤다. “95까지 살면 6년을 어떻게 버텨요. 사람이 어떻게 버텨요, 돈 없이.”

이정수는 대답을 몰랐다.

“예전엔 80살이면 많이 산 거잖아요.” 강동욱이 말했다. “근데 이제는 80이 중간이에요. 중간인데 돈이 없어요. 그럼 뭐예요.”

뭐냐는 질문이었다. 이정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없었다.


“저는요.” 강동욱이 조용히 말했다. “오래 살고 싶은 게 아니었어요. 그냥 평범하게 살다 가고 싶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긴 시간이 남아버렸는지.”

이정수는 수첩을 꺼내지 않았다. 쓸 말이 없었다. 쓸 게 아닌 말이었다.

“정부가 뭔가 해줄 것 같아요?” 강동욱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이정수가 솔직하게 말했다. “해줄 수도 있고, 안 해줄 수도 있고.”

“그렇죠.” 강동욱이 일어났다. “모르는 거죠. 다들.”


복도가 조용했다.

이정수는 앉아서 게시판을 다시 봤다. 장수 설계 상담. 90세 이후 재정 계획.

오래 사는 것을 축복이라고 했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말하는 사람의 통장 잔액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강동욱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정수는 상담실 문을 한 번 봤다가 일어섰다. 자신의 숫자는 오늘 입력하지 않기로 했다. 알면 걸을 때마다 그 숫자가 따라올 것 같았다.

오늘은 그냥 걷기만 하기로 했다.

📢 이 좋은 정보, 혼자만 알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지인과 가족분들도 혜택을 놓치지 않게
지금 바로 이 소식을 전해 보세요!

Kaira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꿈꾸는 40대 1인 콘텐츠 크리에이터입니다. AI·의료·사회 변화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지, 2045년을 배경으로 한 근미래 단편소설 시리즈를 매일 한 편씩 연재합니다. 거창한 SF가 아닌, 지금 살아있는 50~60대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현실적인 미래 이야기를 씁니다.

문의: ad.mp7296@gmail.com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