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이터에 아이가 없었다.
은평천 옆 작은 놀이터였다. 미끄럼틀, 그네 두 개, 모래사장. 이정수가 매일 산책하며 지나치는 곳이었다. 십 년 전만 해도 아이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네가 녹슬었다.
벤치에 노인이 앉아있었다.
이정수와 비슷한 나이였다. 무릎 위에 작은 가방을 올려놓고 있었다. 장난감이 담겨있을 것 같은 크기였다.
이정수가 옆 벤치에 앉았다.
노인이 먼저 말했다.
“여기 애들이 없네요.”
“요즘엔 없어요.” 이정수가 말했다.
“그러게요.” 노인이 놀이터를 봤다. “예전엔 있었을 것 같은데.”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자 데리러 왔어요?” 이정수가 물었다.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손자가 없어요.” 그리고 덧붙였다. “아들이 결혼을 안 해서요.”
이름은 윤기섭이었다. 예순아홉. 아들 하나, 마흔두 살.
아들은 부산에서 혼자 살았다.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처음엔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게 십 년 전이었다. 지금은 그냥 그런 거라는 걸 알았다.
“아들을 탓하는 건 아니에요.” 윤기섭이 말했다. “그 세대가 그런 거잖아요. 결혼 안 하고 아이 안 낳는 게. 뭐라고 할 수가 없죠.”
“그래도 서운하시죠.”
“서운하다기보다.” 윤기섭이 가방을 손으로 쓸었다. “허전한 거예요. 손자 같은 게 생기면 삶이 달라질 것 같았는데. 그냥 계속 이렇게 사는 거구나 싶고.”
“가방 안에 뭐예요.” 이정수가 물었다.
윤기섭이 가방을 열었다. 작은 로봇이었다. 어른 주먹 두 배 크기. 동그란 눈이 달려있었다.
“아들이 사줬어요. 아버지 외로울 것 같다고.” 윤기섭이 로봇을 꺼냈다. 화면을 건드리자 눈이 파란빛으로 켜졌다. “말도 하고, 일정도 관리해주고. 잘 만들었어요.”
“근데요?”
“근데 이걸 들고 놀이터에 오고 싶지는 않잖아요.” 윤기섭이 웃었다. 씁쓸하지 않은 웃음이었다. 그냥 웃음이었다. “손자 데리고 미끄럼틀 태워주고 싶었는데. 이게 미끄럼틀은 못 타잖아요.”
이정수는 녹슨 그네를 봤다.
“아드님이 자주 연락해요?”
“한 달에 한 번 영상통화요. 바빠서.” 윤기섭이 로봇의 눈을 닫았다. “그것도 감사하게 생각해요. 연락 없는 집도 많으니까.”
이정수는 자신의 아들을 생각했다. 부산에 있었다. 마흔. 연락이 뜸했다.
두 사람은 아들이 부산에 있다는 것, 연락이 드물다는 것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 말은 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었다.
윤기섭이 먼저 일어났다.
“다음에 또 뵐게요.” 그가 말했다.
“네.” 이정수가 말했다.
윤기섭이 걸어갔다. 가방을 들고. 로봇이 든 가방을.
이정수는 놀이터를 봤다. 그네가 바람에 조금 흔들렸다. 타는 사람 없이.
출생률 0.4. 숫자는 알고 있었다. 숫자는 녹슨 그네를 설명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