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 열 시, 이정수는 편의점에 들렀다.
인스턴트 커피가 떨어졌다. 별것 아닌데 그게 마음에 걸려 자기 전에 나왔다. 편의점은 이십사 시간 무인 운영이었다. 계산원 없이, 안내원 없이. 들어서자 천장 카메라가 켜졌다.
구석 의자에 노인이 앉아있었다.
낮에도 본 적 있었다. 다른 날 아침에도. 늘 같은 자리였다. 샴푸를 사는 척, 음료를 드는 척, 실제로는 그냥 앉아있었다.
이정수가 커피를 집어들고 계산하려다 멈췄다.
노인은 칠십 중반쯤 되어 보였다. 손에 캔음료를 들고 있었다. 마시는 것 같지 않았다. 그냥 들고 있었다.
이정수가 옆에 앉았다.
노인이 이정수를 봤다.
“자주 오세요.” 이정수가 말했다. 물음이 아니었다.
“예.” 노인이 말했다. “여기가 따뜻해요.”
이름은 허남순이었다. 일흔여섯.
아들이 광명에 살았다. 한 달에 한 번 장을 봐다줬다. 그 외에는 혼자였다. 빌라 옥탑 방에서 십 년째 살았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웠다. 에어컨도 없었다. 전기 요금이 무서웠다.
“그래서 여기 와요.” 허남순이 말했다. “사지 않아도 되니까. 뭐 들고 있으면 직원도 없고 쫓아내지도 않고.”
이정수는 천장 카메라를 올려다봤다. 빨간 불이 켜져있었다.
“카메라가 있는데.”
“이상한 짓 안 하면 괜찮아요.” 허남순이 말했다. “몇 년 됐는데 아무 말 없었어요.”
“외롭진 않으세요. 밤에.”
“외롭죠.” 허남순이 담담하게 말했다. “근데 여기 있으면 좀 달라요. 물건들이 있잖아요. 불도 밝고. 집에 있으면 저만 있는데, 여기는 뭔가 있는 것 같아서.”
뭔가 있는 것 같아서.
이정수는 편의점 안을 봤다. 음료, 과자, 라면, 컵밥. 아무도 없었다. 카메라만 있었다.
그래도 허남순에게는 뭔가 있었다.
“아들한테 말 안 해요, 여기 온다고.”
“말하면 걱정하죠.” 허남순이 캔음료를 선반에 올려놨다. “사실 걱정 안 해도 되는데. 그냥 앉아있는 거니까. 이상한 일도 아니고.”
이정수는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집보다 따뜻한 곳, 빛이 있는 곳, 쫓겨나지 않는 곳. 그게 편의점이라면, 편의점이 그 사람의 거실이었다.
이정수가 일어나며 물었다.
“매일 오세요?”
“여름엔 매일요. 겨울엔 추우면.”
“저도 이 동네 살아요.” 이정수가 말했다. “밤에 오는 일 있으면 또 뵐 수도 있겠네요.”
허남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히 반가운 표정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군, 하는 표정이었다. 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이정수는 커피를 들고 나왔다.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이정수는 생각했다.
무인 편의점. 사람을 없애려고 만든 곳인데, 사람이 와서 쉬고 있었다. 그게 편의점의 원래 용도가 아니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게 더 중요한 용도가 됐다.
세상이 효율을 위해 사람을 없앨수록, 사람은 다른 곳에서 자리를 찾는 것 같았다.
그것이 쓸쓸한 일인지, 아니면 끈질긴 일인지는, 자기 전에 생각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