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무사 사무실은 3층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복도 끝에 종이 박스가 쌓여있었다. 크고 작은 박스들이 벽을 따라 줄지어 있었다. 이사하는 건지, 버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정수는 박스를 피해 걸으며 안쪽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사무실 안에 남자가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십 대 후반에서 육십 초반 사이로 보였다.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넥타이가 느슨하게 풀려있었다. 책상 위에는 서류들이 가지런히 묶여 있었고, 그 옆에 빈 서랍이 열려 있었다.
“퇴직 관련 증명 서류 요청하신 분이세요?”
이정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서류 한 묶음을 내밀었다. “확인해 보세요.”
이정수가 서류를 받아 들었다. 남자는 다시 책상 서랍을 들여다봤다. 꺼낼 것도 없어 보이는 서랍을 오래 들여다봤다.
“오늘 문 닫으세요?”
이정수가 먼저 물었다.
남자는 서랍에서 눈을 들었다. 잠깐 이정수를 봤다가 창밖을 봤다.
“네.”
김재호 변호사. 개업한 지 삼십일 년.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다.
이정수는 서류에서 눈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언제부터요.”
“작년 말부터 알고 있었어요. 법원이 AI 판결 보조 시스템 전면 도입한다고 했을 때.” 김재호는 책상 위 서류 묶음들을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그때는 설마 했죠. 판사는 어떻게 되나, 검사는, 나는. 근데 다 됐어요. 다 됐더라고요.”
창밖으로 자율주행 버스가 지나갔다.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저도 교사였어요.” 이정수가 말했다. “국어.”
김재호가 처음으로 이정수를 제대로 쳐다봤다.
“2043년에요?”
“네.”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억울하지 않으세요.”
김재호가 물었다. 질문이라기보다 혼잣말에 가까웠다.
이정수는 생각했다. 억울한가. 삼십 년을 국어를 가르쳤다. 문장을 다듬는 법, 말이 사람에게 닿는 방식, 침묵이 때로 언어보다 정확하다는 것. AI가 그걸 가르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AI 앞에서도 잘 웃었다. 적응은 빨랐다.
“처음엔 그랬는데.” 이정수가 말했다.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김재호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납득한 것도, 반박하는 것도 아닌 표정이었다.
“저는 아직도 억울해요.” 그가 말했다. “삼십 년 동안 사람 얘기를 들었어요. 이혼하는 사람, 재산 다 날린 사람, 억울하게 잡힌 사람. 그 얘기를 듣고, 법 안에서 뭔가 해주려고 했어요. AI는 그게 안 돼요.”
이정수는 서류를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판결은 해요. 정확하게. 판례 수십만 건을 0.3초에 검토해요. 오류도 없어요.” 김재호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화가 난 사람의 말투가 아니었다. 이미 화를 다 써버린 사람의 말투였다. “근데 저한테 찾아온 사람들은 판결이 필요한 게 아니었어요. 누군가 자기 얘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거였어요. 그게 법이었든 아니든.”
복도 쪽에서 소리가 났다. 박스를 옮기는 소리였다.
“AI는 들어요. 다 기억해요. 근데 들은 것 같은 느낌이 안 나요. 그 차이가 뭔지 저도 설명을 못 하겠어요.”
이정수는 사무실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복도 박스들을 다시 봤다. 가까이 가서 보니 서류들이었다. 오래된 파일들, 손으로 쓴 메모가 붙은 것들. 의뢰인 이름들이 한 글자씩 보였다. 박스 옆면에는 검정 매직으로 날짜가 적혀있었다. 1990년대 것도 있었다.
누군가 삼십 년치 삶을 박스에 담아놨다.
엘리베이터가 왔다. 이정수는 탔다.
1층에 내려서자 로비에 AI 법률 상담 키오스크가 있었다. 화면 속 가상 변호사가 환하게 웃으며 대기 중이었다. 대기 인원 제로. 24시간 상담 가능. 오류율 0.003퍼센트.
이정수는 키오스크를 지나쳐 나왔다.
들은 것 같은 느낌이 안 나요.
바깥 햇빛이 눈에 쏟아졌다. 5월인데도 마스크를 꺼내야 했다. 그는 마스크를 쓰면서 걸었다. 김재호 변호사가 내일 아침 무엇을 할지,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